뇌가 만드는 현실: 의식, 자아, 그리고 우리의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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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만드는 현실: 의식, 자아, 그리고 우리의 감각

마취, 색깔, 감정까지… 신경과학자가 밝히는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의 놀라운 비밀과 미래 기술이 가져올 자아의 변화.

의식이란 무엇이며, 왜 이토록 중요할까요?

수술 시 마취를 통한 ‘존재하지 않던’ 경험은 의식의 근본적인 미스터리를 보여줍니다. 깊은 잠과는 다르게, 마취에서 깨어날 때는 시간의 연속성마저 끊어진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서섹스 대학교 신경과학 교수 아니엘 세스(Anil Seth)는 의식을 “우리 각자에게 존재하는 모든 것”으로 정의합니다. 의식이 없다면 세상도, 자아도, 심지어 고통이나 기쁨도 의미를 잃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고,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모든 과정은 의식을 통해 이루어지므로, 의식은 살아있는 존재로서의 우리를 정의하는 핵심 개념입니다.

‘조절된 환각’: 뇌가 구성하는 현실

우리는 흔히 색깔이 외부에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뇌가 빛의 특정 파장을 바탕으로 수백만 가지 색깔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유명한 ‘파검 드레스’ 논란이나 색맹의 경험은 동일한 자극에 대해서도 개인마다 다르게 현실을 인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아니엘 세스 교수는 이를 “조절된 환각(controlled hallucination)”이라고 설명합니다. 뇌는 두개골 안에 갇혀 외부의 모호한 전기 신호만을 받으며, 이 신호들을 바탕으로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최고의 추측’을 끊임없이 생성하고 업데이트합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바로 이 ‘내부에서 외부로’ 향하는 뇌의 예측과 구성의 결과물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세상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창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감정, 자아, 그리고 뇌-신체 연결

이러한 ‘조절된 환각’ 이론은 감정에도 적용됩니다. 우리는 곰을 보고 무서움을 느껴 도망친다고 생각하지만, 제임스-랑게(James-Lange) 이론에 따르면, 곰을 보는 순간 즉시 신체 반응(심장 박동, 아드레날린 분비)이 일어나고, 뇌는 이 신체 변화를 인지하여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구성합니다. 즉, 감정은 몸의 상태에 대한 뇌의 ‘지각’입니다. 이는 시각과 감정이 동일한 예측 기반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는 통합적인 관점을 제시합니다. 또한, 뇌는 단순히 몸과 분리된 ‘컴퓨터’가 아닙니다. 뇌는 몸을 제어하고 조절하기 위해 진화한 신체 기관이며, 우리의 신체 활동(예: 운동)이 뇌 기능과 기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뇌와 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미래 기술과 자아의 재정의: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의식 업로드, AI 아바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와 같은 미래 기술은 ‘나’라는 자아와 ‘자유 의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파킨슨병 치료, 마비 회복 등 BCI의 놀라운 의료적 잠재력은 분명하지만, 인지 능력 향상을 위한 사용은 윤리적 난제를 야기합니다. 만약 뇌-컴퓨터 인터페이스가 나의 의도나 생각을 조작할 수 있다면, 나의 고유성과 자유 의지는 어떻게 될까요?

아니엘 세스 교수는 이러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정보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우리 뇌의 작동 방식과 신기술의 의미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는 단순히 두려워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는 현명한 선택의 기반이 됩니다. 또한, ‘자아’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임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외부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깊은 연속성을 유지하는 자아의 본질을 깨닫는 것은 고통 속에서도 위안을 줍니다. 이는 동양의 오랜 정신적 전통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지혜입니다. 궁극적으로 의식은 뇌가 구성하는 ‘현실’이며, 이 현실을 이해하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