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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처음 화약이라는 독특하고 위험한 재료로 예술 작업을 시작했을 때, 거실 바닥에 캔버스를 펼쳐놓고 작은 폭발을 일으키곤 했습니다. 작업에 몰두하던 어느 날, 캔버스에 불이 붙은 것을 보신 할머니께서 재빨리 소화기를 가져와 불을 꺼주셨습니다. 그때 할머니께서는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불을 지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불을 끌 줄 아는 것이 훨씬 중요하단다.” 이 할머니의 단순하지만 깊은 가르침은 이후 제 예술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철학이 되었습니다.
파괴와 창조 사이, 예술가의 고뇌
화약 예술은 그 자체로 파괴적 에너지를 내포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폭발의 순간은 새로운 형상과 이미지를 창조해냅니다. 저의 작품들은 이러한 파괴와 창조, 통제와 자유, 어쩌면 독재와 민주주의처럼 상반되어 보이는 개념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동하며 탄생합니다. 위험한 재료를 다루면서도 질서를 부여하려는 시도, 예측 불가능한 결과를 받아들이면서도 나름의 의도를 담아내려는 노력이 제 예술의 근간을 이룹니다. 할머니께서 가르쳐주신 ‘불을 다스리는 지혜’는 단순히 물리적인 위험을 관리하는 방법을 넘어, 삶과 예술에서 균형과 조화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철학적 메시지였습니다.
꿈을 향한 불꽃, ‘하늘 편지’
이러한 철학 속에서, 90년대 초반 저는 ‘하늘 편지’라는 개념적인 작업을 구상했습니다. 불꽃, 즉 화약을 사용하여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거대한 글자를 밤하늘에 새기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제 고향에서는 구름 높이가 약 500미터라고들 했습니다. 이 ‘하늘 편지’는 단순히 밤하늘을 장식하는 불꽃놀이가 아니라, 인간이 별에 닿고 구름을 만지고자 하는 원초적인 염원, 어쩌면 허황될 수도 있지만 세상을 향한 ‘유용한 꿈’을 상징했습니다. 땅에 발을 딛고 하늘을 바라보며 미지의 세계와 소통하려는 시도, 그것이 ‘하늘 편지’에 담긴 메시지였습니다.
가장 소중한 이에게 바치는 선물, ‘황금 사다리’
저는 전 세계를 돌며 수많은 예술 작업을 해왔고, 제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졌습니다. 하지만 정작 저에게 가장 큰 영감을 주시고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신 저의 할머니께서는 제 작품을 단 한 번도 직접 보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할머니께 꼭 보여드릴 수 있는, 정말 특별하고 대단한 것을 만들기로 오랫동안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2015년, 그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그해 100세 생신을 맞으신 할머니를 위해 저는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2015년 어느 새벽녘,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하늘을 가르고 찬란한 황금빛 사다리가 하늘로 솟아올랐습니다. 이 ‘황금 사다리’는 100년의 삶을 살아오신 할머니께 드리는 생일 선물이자, 땅과 하늘, 현세와 영원이라는 상반된 세계를 연결하고자 하는 염원을 담은 작품이었습니다. ‘하늘 편지’가 젊은 날의 꿈을 향한 외침이었다면, ‘황금 사다리’는 삶의 정점에서 하늘에 닿고자 했던 간절한 마음의 표현이었습니다.
황금 사다리가 밤하늘을 비춘 지 한 달 뒤, 할머니께서는 편안히 눈을 감으셨습니다. 어쩌면 황금 사다리는 할머니께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시는 길을 밝혀드린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할머니께서 가르쳐주신 ‘불을 끄는 지혜’는 화약이라는 재료를 다루는 기술적인 조언을 넘어, 예술가로서, 한 인간으로서 제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 되어주었습니다. 파괴적인 에너지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예측 불가능성 속에서 질서를 발견하려는 저의 여정은 계속될 것입니다. 할머니께 바쳤던 ‘황금 사다리’처럼, 제 예술이 누군가에게는 꿈을 향한 계단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삶과 삶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기를 바랍니다.